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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논공행상 == 전투 후 성간전략동맹 황실은 막시밀리안 폰 호엔필스에게 파격적인 예우를 베풀었다. 그는 이 전과를 인정받아 황실 방계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왕가의 외척으로 편입되었고, 이를 계기로 호엔필스 가문은 몰락하지도 유력하지도 않았던 이전의 입지에서 벗어나 급속히 구귀족 사회의 중심으로 편입되었다. 이후 약 200년에 걸쳐 호엔필스 가문은 성간전략동맹 구귀족 사회를 주도하는 핵심 가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며, 이는 [[아나스타샤 하자미 볼코나야]] 즉위 당시까지도 이어지는 구귀족 세력의 뿌리 중 하나로 거론된다. UNSA 측에서는 전사한 세 준장 — 리처드 아처, 월터 하딩, 프랭클린 모스 — 모두 사후 해군 소장으로 추서 진급되었다. 이들의 이름은 이후 각각 UNSA 해군의 함급 명명 과정에서 함명으로 계승되어, 전투 당시의 함선들과는 별개로 후대의 순양함 및 구축함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기록이 있다. WESTCOM 지휘부 내에서는 세 차례의 축차 투입을 결정한 참모진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으나, 통신 두절이라는 예외적 상황 속에서 내려진 판단이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공식적인 문책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. 다만 이 전투를 계기로 WESTCOM 내부의 정보 판단 체계와 긴급 대응 절차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졌으며, 이는 이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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